Yetsuby: 장르를 넘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드는 음악
한국 전자음악 신(Scene)에서 예츠비(Yetsuby, 본명 Yejin Jang)라는 이름은 서로 다른 두 개의 풍경으로 기억된다.
하나는 우만 써마(Uman Therma)와 함께하는 듀오 살라만다(Salamanda)를 통해 들려주는 섬세하고 명상적인 레프트필드 앰비언트다. 자연의 소리와 미세한 질감,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듯한 공간감으로 구축한 살라만다의 음악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전자음악 씬에서도 독창적인 위치를 만들어왔다.
또 하나는 솔로 아티스트 예츠비로서 펼쳐 보이는 더욱 직접적이고 강렬한 세계다. 브레이크, 정글, EBM, 베이스 음악 등 다양한 리듬과 질감을 활용하는 그녀의 DJ 셋과 프로덕션은 댄스플로어 위에서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두 세계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예츠비에게 음악은 언제나 소리의 질감(texture)과 움직임을 탐구하는 과정이며, 앰비언트와 댄스 음악은 서로 다른 언어일 뿐 하나의 감각 안에서 연결된다.
— Salamanda : Sala (Uman Therma) & Manda (Yetsuby)
Photo ⓒ Xione Qin (for Crack Magazine, 2022)
살라만다,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방법
2018년 결성된 살라만다는 예츠비와 우만 써마가 공유하는 음악적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두 사람은 앰비언트, 실험 전자음악, 비디오 게임과 애니메이션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사운드 세계를 구축했다.
살라만다는 프랑스 비아리츠의 Good Morning Tapes, 독일 베를린의 Métron Records, 미국 뉴욕의 Human Pitch, 영국 브리스톨·런던 기반의 Wisdom Teeth 등 세계적인 전자음악 레이블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으며, 런던의 NTS Radio와 프랑스 리옹·파리 기반의 LYL Radio 레지던트 활동을 통해 글로벌 전자음악 커뮤니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왔다.
살라만다의 음악은 단순히 “편안한 앰비언트”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세한 리듬, 유기적인 텍스처, 말렛 악기와 전자음이 결합된 그들의 사운드는 하나의 공간과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2022년 발표한 앨범 《Ashbalkum》은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 Salamanda - “Overdose” (from 《Ashbalkum》). 살라만다 특유의 몽환적인 사운드스케이프와 시각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 피치포크는 “빗방울과 한숨을 한 올 한 올 엮어 만든 미니멀 덥 테크노”로 표현한 바 있다.
10개의 트랙은 말렛 악기, 사뿐사뿐 두드리는 듯한 드럼, 부드럽게 둥근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손에 쥔 해변의 유리 조각처럼 빛나고 매끄러운 질감을 지닌다.
— Pitchfork, 《Ashbalkum》 review (Philip Sherburne, 2022)
하지만 예츠비의 음악 활동은 살라만다라는 듀오 안에서만 설명되지 않는다. 솔로 아티스트 Yetsuby로서 그녀는 보다 다양한 리듬과 장르를 탐구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영역을 확장해왔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소리에 대한 호기심
예츠비의 음악적 여정은 살라만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성장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모아둔 다양한 음악 컬렉션과 집에 있던 피아노는 그녀가 소리를 탐구하는 첫 번째 공간이었다.
예츠비는 Mixmag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흥미로운 커버를 가진 CD를 골라 듣고, 그 커버를 가지고 놀거나 집에 있던 피아노로 그 소리를 따라 하곤 했어요.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음악 속에 있었고, 다양한 장르에 노출되어 있었죠
— Yetsuby, Mixmag interview, Megan Townsend, 19 March 2025
어린 시절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음악으로는 바흐의 칸타타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BWV 140〉를 꼽는다. 이후 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며 음악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익혔고,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과 아방가르드 전자음악을 접하면서 소리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눈뜨게 된다.
그리고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의 음악은 그녀가 직접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전자음악이 단순히 새로운 소리를 설계하는 작업을 넘어, 감정과 서사, 개인적인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매체라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 Yetsuby, 2023.09
솔로 Yetsuby: 장르를 넘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드는 음악
살라만다가 미세한 질감과 공간감을 탐구하는 듀오라면, 솔로 프로젝트 Yetsuby는 보다 직접적이고 자유로운 실험의 장이다. 예츠비는 브레이크비트, 정글, IDM, 베이스 음악, 앰비언트, 글리치, EBM 등 다양한 전자음악의 문법을 넘나들며, 특정 장르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 왔다.
2019년 첫 정규 앨범 《Heptaprism》을 발표한 이후, 《JIN06》(2021), 《MY STAR MY PLANET MY EARTH》(2023), EP 《check this out》(2024), 그리고 두 번째 정규 앨범 《4EVA》(2025)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디스코그래피는 장르를 확장하는 과정이자 소리 자체를 탐구해 온 기록이라 할 수 있다.
《JIN06》는 예츠비의 상상력과 장르 감각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수록곡 〈Bear Becomes Human〉은 한국 설화 속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되는 이야기를 현대적인 드럼 앤 베이스 사운드로 재해석한다. 전통적인 서사를 클럽 음악의 언어로 옮겨온 이 곡은, 익숙한 이야기를 낯선 전자음악으로 다시 들려주는 예츠비의 독창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Bay〉와 〈Jelly〉에서는 드럼 앤 베이스와 IDM, 글리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로 다른 질감과 분위기를 구축한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는 감각은 이후 발표한 작품들에서도 꾸준히 이어진다.
— 《MY STAR MY PLANET MY EARTH》 (2023, The Internatiiional)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 《MY STAR MY PLANET MY EARTH》다. 2023년 발표된 이 앨범은 2024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을 수상하며 예츠비를 한국 전자음악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 작품에서 예츠비는 앰비언트와 IDM, 브레이크비트, 실험 전자음악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디지털 신호와 유기적인 텍스처, 장난기 어린 멜로디와 예측하기 어려운 사운드 디자인이 공존하며, 서로 다른 음악적 언어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세계로 연결된다. 이는 장르를 혼합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소리의 질감과 움직임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구축해 온 예츠비의 작업 방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어 발표한 EP 《check this out》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 기반 콜렉티브 Program Audio의 제안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DJ로서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클럽 지향적 릴리즈다. 브레이크와 베이스 중심의 리듬, 직선적인 드럼 프로그래밍, 매끄럽게 이어지는 네 개의 트랙은 실제 댄스플로어에서 기능하는 음악을 향한 예츠비의 감각을 담아냈다. 인터뷰에서 그는 "디제잉할 때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댄스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 《4EVA》 (2025, Pink Oyster Records)
2025년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4EVA》는 지금의 예츠비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어쿠스틱 사운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브레이크비트, 베이스, 풋워크, 앰비언트, IDM, 컨템퍼러리 클럽 등 다양한 전자음악의 요소를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엮어낸다. 서로 다른 장르를 병치하기보다 자신만의 감각으로 흡수하고 재구성하며, 우주적인 스케일과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동시에 담아낸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I AM 뇌로운 인간>은 여섯 살 어린 여동생이 아홉 살 때 그린 낙서에서 출발했다. 당시 여동생은 '외로운 인간'이라고 쓰려다 맞춤법을 틀려 '뇌로운 인간'이라고 적었고, 예츠비는 이 우연한 오기를 '고뇌'와 '외로움'이 겹쳐진 말처럼 해석한다. 《4EVA》는 이 개인적인 기억을 출발점 삼아 외로움과 연결감, 그리고 그 감정이 자신과 타인 사이에서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탐색한다.
결국 《4EVA》는 예츠비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소리의 질감과 장르를 넘나드는 감각을 가장 완성도 높게 구현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하나의 장르를 선택하기보다, 장르를 재료 삼아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디스코그래피를 관통하는 것은 특정 스타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소리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태도다.
저는 장르 자체보다 소리의 질감과 구조, 그리고 아주 미세한 디테일에 더 끌립니다. 그래서 제 음악은 하나의 장르로 분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음악적 여정의 끝에서는 제 음악이 하나의 장르, 'Yetsuby'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 Yetsuby, Mixmag interview, Megan Townsend, 19 March 2025
독학과 클럽 문화 속에서 성장한 DJ 예츠비
프로듀서로서의 성장과 함께 DJ 예츠비의 정체성도 만들어졌다. 그녀의 디제잉 역량은 탄탄한 독학과 동료들과의 긴밀한 교류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녀는 서울 망원동의 서브컬처 공간 IDAHO에서 진행된 How to Spin 워크숍과 서울재즈아카데미 등을 통해 DJing을 배웠고, 동료들과 함께 음악을 공유하며 감각을 확장했다.
특히 동료 DJ 세륜(Seirun)의 작업실에서 밤새도록 이어간 B2B 플레이 경험은 장르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을 탐구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처럼 제약 없이 음악을 탐구했던 초창기 경험은 현재 그녀가 보여주는 자유로운 DJ 셋의 기반이 됐다.
— The Internatiiional Party (2025. 2. 21, Club Modesi, Seoul)
— Yetsuby at The Lot Radio (2025). 뉴욕의 독립 인터넷 라디오 플랫폼 The Lot Radio에서 선보인 라이브 DJ 셋. 브레이크비트, 베이스, 정글를 중심으로 한 예츠비의 현재 클럽 사운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최근 공연 중 하나.
Computer Music Club: 댄스플로어를 위한 새로운 실험
예츠비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속해 있는 댄스플로어 음악 프로젝트, Computer Music Club를 빼놓을 수 없다.
2021년 예츠비는 우만 써마(Uman Therma), 영다이(Yeong Die)와 함께 CMC를 결성했다. 세 사람은 모두 DJ로 활동하며 댄스플로어 음악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공유했지만, 각자의 솔로 작업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의 실험을 이어가고 있었다.
CMC는 이러한 세 사람이 기존의 작업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클럽 음악을 탐구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스스로를 '레이블이지만 레이블은 아닌(label, but not a label)' 존재로 소개하는 CMC는 특정 장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커뮤니티를 지향하며, 컴필레이션과 파티, 협업을 통해 새로운 댄스플로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 Computer Music Club(CMC)의 첫 번째 컴필레이션 《Computer Music Club Vol. 1》(2021). 예츠비(Yetsuby), 우만 써마(Uman Therma), 영다이(Yeong Die)가 결성한 CMC는 '레이블이지만 레이블은 아닌'이라는 정체성 아래, 1990년대 컴퓨터 문화와 게임 미학을 바탕으로 브레이크와 하드코어, 베이스 음악 등 댄스플로어 사운드를 새롭게 탐구했다.
음악을 넘어, 씬을 만드는 사람으로
예츠비에게 전자음악은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행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음악을 둘러싼 환경, 그리고 그 음악을 함께 경험하는 커뮤니티의 중요성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태도는 음악과 패션, 예술을 다루는 콜렉티브 '더 인터내셔널(The Internatiiional)'에서의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패션 브랜드에서 출발한 인터내셔널은 파티, 레이블, DJ 워크숍 2dfx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국내 언더그라운드 전자음악 문화를 확장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예츠비는 이 콜렉티브의 음악적인 방향성을 함께 만들고, 새로운 창작자들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 전자음악 씬이 가진 가능성과 동시에 지역적 확장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일본처럼 도쿄뿐 아니라 여러 도시에서 독자적인 음악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아티스트들이 전국을 순회할 수 있는 환경과 달리, 한국의 전자음악 문화는 여전히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는 한국의 씬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얘기하면 서울에만 이런 흐름들이 모여 있는 게 아쉬워요. 해외에서 아티스트가 와서 이벤트를 한다고 해도 서울 밖에 옵션이 없거든요. 일본만 봐도 도쿄가 아닌 곳에도 씬이 있어서 한 나라 안에서 투어를 돌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 한국은 아직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나중에 더 훌륭한 사람이 되면 이런 부분에 힘을 쓰고 싶어요.
— Yetsuby, ALPS ISSUE 04, 「The Internatiiional의 비전, 아렉시보, 예츠비, 그리고 임솔과의 대화」
이러한 고민은 단순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에게 씬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 Yetsuby | Boiler Room Seoul: The Internatiiional (2023). 서울의 음악·패션·예술 신(Scene)을 아우르는 크리에이티브 컬렉티브 The Internatiiional과 함께한 Boiler Room 세션. 예츠비는 DJ 셋을 통해 자신이 탐구해 온 브레이크, 정글, 베이스 음악 중심의 강렬한 클럽 사운드를 선보였다.
앰비언트와 클럽 음악, 개인의 창작과 커뮤니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온 예츠비. 그녀가 지금 가장 선명하게 들려주는 현재의 사운드는 '프랙티스 커런트 PRECTXE CURRENT' 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 ■
Cover Photo © Xione Q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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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티스가 큐레이션하는 예츠비(Yetsuby)의 현재를 가장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는 오는 2026년 7월 24일(금), 성수동 UNDERCITY에서 열린다. (예매 링크 : www.2tm.co.kr/ticket/10280)